해외근무수당
파월 국군장병들이 베트남전 기간에 미측으로부터 받은 해외근무수당은 같이 파병된 필리핀, 태국군과 비슷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2일 공개한 베트남전 관련 문서 중 `파월장병 처우개선’과 8월 공개된 사이밍턴 청문록 등에 따르면 미측으로부터 받은 파월 한국군의 해외근무수당이 비전투부대를 파병한 필리핀, 태국의 그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한 달을 기준으로 준장의 경우 한국군과 필리핀군은 공히 210달러, 중령의 경우 한국군과 필리핀군은 180달러, 태국군 210달러, 소위의 경우 세 나라 모두 120달러 였다.
`파월장병 처우개선’ 자료에는 필리핀 준장과 중령이 각각 563달러, 359달러 등으로 기재되어 있어 필리핀군이 한국군보다 두 배 가량 많이 받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는 자국정부로부터 받은 해외근무수당을 합한 수치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파월 국군장병들이 베트남전 기간에 미측으로부터 받은 해외근무수당은 총 2억3천556만8천400달러로, 이 중 82.8%에 달하는 1억9천511만800달러가 국내로 송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간 집계된 액수로, 대일청구권자금으로 받아낸 3억달러와 유사한 규모의 외화를 획득함으로써 경제개발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박사는 2일 “정부가 베트남전쟁 수행과정에서 유입된 외화를 이용해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산업 건설을 위한 재원의 조달은 물론 오늘날과 같은 국가발전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송금 비율은 1965년 58.8%에 불과하던 것이 ▲1966년 75.3% ▲1967년 81.7% ▲1969년 85.5% ▲1972년 87.0% 등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늘어났다.
최 박사는 “현지 소비도 텔레비전, 냉장고, 선풍기 등 가전제품 구매가 주였기 때문에 해외근무수당 대부분이 국내에 유입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미 양국 정부는 파월 한국군에게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을 기밀로 하기로 합의해 그간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1966년 3월4일 김성은 당시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인 비치 대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귀 정부가 일당(해외근무수당)을 보조한다는 사실은 국회에서 필요시 기밀로 논의되는 이외에는 양 정부의 이익을 위해 기밀로 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 정부가 타국의 해외근무수당을 대신 지급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국 국회에서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를 비밀로 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청했음을 시사했다.
[베트남전] 문서공개 완료..역사속으로
눈에 띄는 대목은 동서진영간 극도의 대립구도를 보였던 당시 우리 정부가 북한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권 저지를 위해 외교총력전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60년대말 한국, 일본, 대만을 아우르는 `지역방위기구’ 결성을 검토하면서 미국과 적극적인 교섭을 벌일 필요성을 직접 제기했다.
이는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주한미군 2개사단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대두되고 우리 국군도 대거 파병됨에 따른 안보공백을 극도로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우리 정부는 파병국 외무장관회의에서도 1.21사태나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등을 집중 제기하며 북한의 재도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문서공개로 드러난 우리나라의 NPT(핵무기비확산조약) 가입에 대한 고민도 당시의 안보 우려가 얼마나 심각했었는 지 가늠하게 해준다.
당시 NPT 미가입국인 중국의 핵무기 공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리가 NPT에 가입할 경우 대응체계로서의 자체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원천차단 당한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측의 반대로 무산돼 당시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성을 띠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당시 우리 파병국군이 미측으로부터 지급받은 해외근무수당의 82.8%에 달하는 1억9천511만달러가 국내로 순수 유입된 점도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