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이 미국한테서 수당 적게 받았다는 의혹은 거짓이었다 미 국방부 보고서 수록한 의회 청문회 회의록 전 12권 모두 입수 미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한국뿐 아니라 월남참전 13개국 현황 상세 조사 ‘소위(少尉) 3분의 1 값에 팔렸다’는 주장은 사실무근…미, 3개국 동일액수 지원 확인 한국군 해외근무수당, 필리핀보다 많고 태국보다 적어…3개국 큰 차이는 없어 정부가 진작 사이밍턴 회의록 입수했다면 헐값파병 의혹은 조기에 해소할 수 있었다

기밀 보고서 추가수당

기밀 보고서 추가수당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서울행정법원『전투수당』판결 내용

구 군인보수법 제17조는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 대하여 전투근무수당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베트남 전쟁은 대한민국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므로 원고들과 같은 파병 군인의 경우 전투근무수당의 지급요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또한 원고들이 평형성만을 이유로 피고에게 미국군과 동일한 해외근무수당의 지급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설령 원고들이 주장하는 수당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가 모두 완성되었다.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베트남전은 국가의 전시 상황이라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참전 용사들은 전투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조한창)는 A씨 등 베트남전 참전 용사 30명이 "전투근무수당과 해외근무수당 중 부족하게 지급한 부분을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베트남전] 브라운각서와 사이밍턴 청문회

[베트남전] 브라운각서와 사이밍턴 청문회 이번 공개 문서에는 1966년 한국군의 추가파병 조건에 대한 양해사항을 담은 `브라운각서'의 이행 상황과 그 전모를 드러낸 1970년 2월 24∼26일 미 상원 사이밍턴 청문회 내용과 우리측 대응과정이 자세히 담겨 있다. 브라운 각서의 정식 명칭은 `한국군 월남 증파에 따른 미국의 대한(對韓) 협조에 관한 주한미대사 공한(公翰)'이다.

브라운각서란?

브라운각서란? 1966년 3월 미국정부가 한국군 전투사단의 월남 추가파병을 요구 해 옴으로서 우리정부가 그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양해사항을 당시 브라운 주한 미 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전달한 미국정부의 공식문서다. 한국은 1964년 비전투부대 파병에 이어 1965년 10월 국군 맹호사단 본대를 월남에 파견 했으나 월남정부는 전세가 불리 해 지자 미국을 통해 추가로 전투사단 파병을 요청 하였다.

고엽제후유의증환자 장애등급판정 관련

신청인은 월남전 참전유공자로서 2004년에 고엽제후유의증으로 경도등급 판정을 받고 치료를 하던중 상태가 심해져서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 광주보훈병원에서 2016년에 신검을 하였으나 오히려 상태가 2004년 보다 좋아졌다고 등외로 판정받아 해당 수당을 못 받고 있다가 2년 후인 2018년에 재검진을 통해 경도로 재판정을 받았으니 이는 2016년의 신체검사가 잘못된 것이므로 2016년에서 2018년간의 지급하지 않은 장애수당을 소급해서 지급해달라

고엽제후유의증환자의 장애등급 구분표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장애등급 구분표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베트남어: Chiến tranh Việt Nam찌엔짠비엣남, 영어: Vietnam War, 프랑스어: Guerre du Vietnam) 또는 월남 전쟁(한국 한자: 越南 戰爭), 월남전(한국 한자: 越南戰)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 12월 19일 ~ 1954년 8월 1일) 이후 분단되었던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1일[52]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 전쟁 양상을 띠었고,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고 캄보디아·라오스로 전선이 확대되어 국제전으로 치러졌다.